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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를 대하는 태도

새끼 고양이

아범아, 올해도 고양이 농사가 풍년이구나.

요즘 들어 고양이들이 내 주변에 자주 출몰한다. 흔한 길고양이 뿐 아니라 새끼 고양이, 임신한 고양이들도 평소와 다르게 자꾸 눈에 띄는 것이, ‘아 벌써 고양이 수확철인가? 올해는 고양이 농사가 풍년이네.’라는 농담을 할 정도.

원래 고양이들이 많은 롬복이긴 해도, 이쪽 본 섬의 고양이들은 길리의 고양이들과 달리 사람에 대한 경계심이 좀 있는 터라 눈에만 자주 보일 뿐 사람들과(나와) 어떤 교류가 있다거나 하진 않았다. 집 주변에도 몇 마리가 항상 왔다갔다 돌아다니긴 했지만, 내가 가까이 다가가면 매번 후다닥 도망가곤 해서 딱히 관심을 갖진 않았다. 나도 뭐 아쉬울 거 없고. 

 

사무실 고양이

사무실에서는 작년 초 무렵 부터 고양이 한마리가 야외 1층 간이식당에 자주 출몰하더니, 식당에 죽치고 앉아 먹이를 얻어 먹는 일이 반복됐다. 거의 모든 직원들과 안면(?)을 트고 매 끼니 잔반을 얻어 먹는 일이 당연해지자 활동 반경도 점차 넓어지기 시작했다.

슬슬  1층과 2층을 오가고 사무실과 미팅룸에 돌아다니거나, 캐피냇과 벽 사이에서 자는 일이 자주 목격됐다. 누군가 쳐다보는 느낌이 들어서 뒤를 돌아보면 창 밖에서 고양이가 보고 있기도 하고.

그러더니 몇 달 후 그냥 그대로 눌러 앉아 사무실 고양이가 되는구나 싶었는데, 요즘 그 노랑이가 보이질 않는거다(몇 주의 수습기간?이 지나면 이름을 지어준다). 자주 있는 일이니까, ‘아, 또 갔구나. 언제 또 오겠지 뭐.’라는 생각으로 잊고 살았다.

사무실에 사는 길고양이
‘사무실 고양이’와 ‘길고양이’의 경계에서 살고 있는 노랑이

 

고양이를 대하는 태도, 혹은 바람직한 관계는 무엇일까?

난 사람이 고양이를 대하는 태도, 이른바 고양이와 사람 사이의 관계는 이러한 느슨한 관계가 서로에게 유익하고 편하다는 생각이다. 일종의 책임감과는 조금 다른 얘기인데, 요약하자면 고양이와 너무 친하게 지내지 말자는 입장이다. 자칫하단 애정과 관심이 집착이 되고 구속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어느 한 쪽에겐 마음의 깊은 상처가 될 수도 있다. 이건 고양이에게도 별로고, 나에게도 별로다.

이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고양이들에게 활동반경을 제한하고 중성화를 시키며 본성을 억누르게 하는 대신 적당한 장난감과 부족하지 않은 먹이로 위로(?)하는 것. 요컨대 ‘고양이를 기르다’라는 문장이 갖는 일련의 모든 행동 자체가  ‘애완’이라는 이름으로 그럴듯 하게 포장된 인간의 이기적인 소유욕처럼 느껴진다. 게다가 ‘인간의 입장’에서 보살핌이라 여겨지는 이 행위 마저도 고양이의 외모가 예쁘거나 귀여워야 한다는 일종의 전제조건이 붙는다. 대놓고 얘기 못할 뿐, 이건 불문율이나 다름없다.

고양이를 대하는 태도
사무실 뒷편에 새끼를 낳은 어미 고양이. 새끼와 어미 모두 꼬리가 심하게 휘어있다.

사람들은 모든 고양이에게 아낌없는 사랑과 관심을 주고 모든 고양이를 평등하게 대할 듯 얘기 하지만, 우리는 과연 말처럼 행동할 수 있을까?  피부병이 걸려 털이 빠진 고양이나 한쪽 눈이 다친 고양이를 예쁘고 품종 좋은 고양이만큼 좋아해 줄 수 있을까? 기형적으로 꼬리가 휜 고양이를 집에 모시고 ‘집사’ 노릇을 해 줄 수 있을까? 아마 그러지 못할 것이고, 그렇게 할 수 없는 그럴 듯한 이유는 얼마든지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모든 고양이를 평등하게 대할 자신이 있는가?

생각이 이쯤에 미치면 머릿 속이 복잡해진다. 그리고 난 자신 없다. 인간의 무의식 속에 만들어진 미의 기준에 의해 고양이를 대하는 태도(행동과 감정)가 달라지고, 고양이는 간택(?)을 받느냐 못 받느냐가 결정되는 문제, 고양이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타고난 외모에 의해 차별되고 더 나아가서는 서열화 된다는 것. 이건 어쩌면 우리가 그토록 혐오하던 우리 사회의 단면과 너무 닮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나 역시 아무리 노력한들 언젠가는 그렇게 고양이를 차별하고 서열화하고, 때로는 내 기분에 따라 이기적으로 대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스스로 잘 알고 있다. 난 안 그럴 줄 알았지만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그래서 난 모든 고양이에게 평등하게 대할 자신이 없고 항상 같은 마음으로 대할 자신도 없다. 고양이와 깊게 친해지려 노력하지 않는 이유다. 

글쎄.. 어쩌면 이런 생각들은 고양이라는 생명체에 책임지기 싫은 나의 그럴듯한 변명일지도 모르겠다. 아, 이깟 고양이가 뭐라고 진짜..

 

집 고양이와 길 고양이, 어느쪽이 더 행복할까?

내 생각과는 별개로, 고양이의 생각은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중성화 당하고 활동반경이 제한된 애완 고양이가 배고픈 길고양이보다 더 행복할까? 배고프지만 자유로운 길고양이가 더 나은 삶은 아닐까? 고양이는 답을 알고 있을까? 난 모르겠다, 뭐가 맞는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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