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혹, 하지만 다시 스타그래프트

brood war지난 주에 후배 가 일주일 동안 우리 동네에 머물렀다.

비행기 타고 오가는 거리에 떨어져 있지만 이상하게 자주 보는 후배. 둘이서 딱히 새롭게 할 것도 없고 할 얘기도 많지 않은데, 남자 둘이 일주일이란 시간을 서로가 서로에게 소중히 그리고 알차게 보냈다는 생각을 들 게 해준 것은 아무래도 국민 게임 스타크래프트의 힘이 컸다.

담배연기 자욱한 모니터 앞에서 서서히 드러나는 맵을 보며 희열을 느끼고, 치열한 전투와 전략 안에서 말 그대로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그 시간을 함께 보내다보면 비록 넌 나의 적이지만 그래도 멋진 테란이었다 같은 묘한 우정이 싹튼다.

게임이 끝나면 나의 전략은 무엇이었는지, 너의 전략이 어쨌다느니, 의미 없는 훈수와 아쉬운 한탄이 오가며 다시 한번 파이선 맵에서 카운트를 기다리길 반복하다보면 어느새 저녁시간. 그래 잘됐다, 이번 판은 저녁내기다.

그렇게 며칠을 질럿과 마린들과 함께 보내고 마우스와 단축키가 손에 익을 무렵 쯤에 후배가  다시 떠났다. 예상했던 공허한 시간들이 이어진다. 회사 일이 많이 밀렸음에도, 무슨 아쉬움 때문인지 난 아직도 패한 게임들을 복기하며 입구 막기를 연습하고 지난 프로게이머들의 방송들을 찾아본다. 내 나이 곧 불혹이라는데 임요환의 3연벙을 찾아 보며 감탄 하게될지는 정말 생각도 못했다. 뭐가 불혹이야, 흔들리잖아. 후배는 일이 잘 안 풀린다며 한탄을 했지만, 경기가 안 풀렸을 때의 한탄과 분노의 무게만큼엔 못 미쳤던 것 같다. 역시 곧 불혹의 나이다.

둘 다에게 해당되는 얘기지만, 일이 잘 안 풀리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게임 때만큼의 집중력을 일에 적용할 수 있다면 해결 못할 일이 없고, 안 풀릴 일이 없다. 운이 없고 기회가 없는 것이 아니라, 그리고 환경이 문제가 아니라, 개념이 없는 거다. 오랜만에 스타를 하며 원효대사급 깨달음을 얻었으니 스타를 한 시간이 헛되진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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